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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노트
“원시인농장” 나의작업실이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하늘보고 주변 자연들의 삶을 엿보고 또 그것을 통해 사유와 삶의 지혜를 찾아본다.
그러다보니 사람들보다 자연물이 나의 이웃이고 또 다른 가족이 되어 버렸다.
현대문명의 발달로 지구는 기후변화를 불러오게 하고 인간과 사회는 점점 황폐되어가는게 안타깝다.
그러니 자연은 인간들과 치열한 생존투쟁을 하고 있다.
그동안 무척이나 더웠던 한여름 연일 한낮의 폭염과 열대야에 여름 땀으로 장맛비가 되었다.
“Made in Nature-Cloud”
구름, 착한구름, 바보구름, 이뿐구름, 꽃구름, 슬픈구름, 기타 등등 구름,
맘이 한결 편안해온다. 오늘도 저 구름들은 어디선가 또 흔적을 남기고 한가로이 흘러가는가?
유유히 흐르는 파아란 하늘안의 솜, 녹색별 지구에서만 볼 수 있는 구름, 솜사탕같이 달콤하게 보이고 그 위에 걸터 앉으면 마냥 푸근하게 보이는 그 이름! 구름! 인간에겐 절대적인 물을 머금고 있는 천상의 자연물이다!
22년 만의 최악의 폭염이었던 올해 너무나 절실했었던 자연물이 먹구름이었다.
유난히도 나는 이 구름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인생의 절반의 나이에 자연인으로 살다보니 물을 듬뿍 머물고 있는 비구름이 나는 좋다.
이 구름들을 나는 착한구름, 바보구름, 이뿐구름, 꽃구름, 웃음구름, 기타등등~ 하나하나 이름을 붙어본다. 우리들은 매일 흔히 볼 수 있는 구름과 자연의 모든 것들을 나의 작업과 연관 지어서 표현하고자 했다.
지금까지의 작업이 아주 포괄적인 주제와 대중적인 부분에서 사실적이었다고 한다면 이번 작업은 자연적인 삶에서 하늘과 땅과 물의 조화가 바로 예술의 에너지로 우리들의 갈증해소를 느끼게하는 개념인 것이다.
즉 <Nature & Philosophy>으로 시각자로 하여금 조금의 순수함과 절실함을 보여주고자 이중적인 화면에 하나로 결합시키는 표현방법이다. 구상적인 부분과 추상적인 생각이 하나의 화면으로 전달하는 것은 결국 모든 자연의 소리는 아름다움이다, 라는 하나로 통일된다.
지금까지 내가 얼마나 자연을 갈망하고 자연의 모습에서 컨셉이라는 부분에 대한 갈증을 느꼈는지에 대한 공감이라는 것을 모티브로 잡은 것은 아니다. 나의 작업을 일반 사람들이 보았을 때 얼마나 쉽고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지를 표현하는 작업방식으로 내가 자연을 바라보는 철학이다.
((오늘날 지구 땅의 4분의 3은, 그것이 도시나 농지든, 목초지나 공장 혹은 쓰레기장이든, 인간이 개입하고 조작한 흔적이다. 황무지나 고산지대나 극지방은 그런 개입이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이런 곳도 대기나 해류를 통해 갖가지 화학물로 오염되어 있다. 기후 변화는 그 때문일 것이다.
이제 자연은 더 이상 낭만적인 감정으로 대하기 어렵게 되어버렸다. 자연을 ‘인간에 의해 전혀 영향 받지 않은 채 그 자체로 자라나고 사라지는 생태계’라고 한다면, 그래서 ‘순수성’과 ‘아름다움’, ‘균형’과 ‘조화’를 상징하는 것이라면, 그런 고전적 의미의 자연은 더 이상 없다고 우리는 말해야 한다. 이렇게 자연이 완벽하게 사라지고 있기 때문에, 거꾸로 자연을 그만큼 강렬하게 바라는 것일 것이다.
현대는 자연 과잉의 비자연적 인공 시대다. 그렇다면 현대의 자연은 더 이상 순수 자연이 아니라 차라리 인간의 소산이고 문명의 산물로 봐야 할 것이다.
자연 - 생명의 근원공간
그러나 한 걸음 다시 물러나자. 이런 생각도 인간의 관점이 개입된 인간 중심적인 시각일 수도 있다. 자연은, 한 걸음 떨어져 더 냉정하게 보면, 인간이 아니라도 이미 거기에 있고, 인간 이전처럼 인간 이후에도 자리할 것이다.
사실 자연의 모든 사물은 인간의 영향 이전에 그냥 있지 않는가? 그러니 자연은 그 자체로 아름다울 것도 없다고 말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 무심하고 냉정한 자연 속에서 인간은 좋든 나쁘든 그 속에서 부대끼며 살아야 한다. 자연이 아무리 오염되고 파괴되었다고 해도 삶과 생명의 공간으로서의 본질적 성격은 사라지지 않는다. 바로 이 점—자연은, 그것이 물질적 환경적 생명의 근본 조건을 되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그리고 너무도 중대한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인간이 자연에 ‘빚지고’ 있다는 자각은 단순히 어떤 도덕의식이나 양심에서가 아니라, ‘명백한 사실’로서의 인간과 자연, 생명과 지구의 불변적 유대 때문에라도 절실한 것이 된다.
아마도 생명 공간의 토대로서 자연이 갖는 이미지는, 모든 낭만적 자연 이해의 허위성에도 불구하고, 또 아무리 이 지구가 쓰다만 중고품처럼 되었다고 해도, 여전히 중요할 것이다. 많은 시인과 철학자가 자연을 어떤 쇄신 혹은 그리움의 근원으로 여긴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모든 미학적 시도 그리고 예술적 표현이 그리려는 것도, 적어도 궁극적으로는, 삶의 모태로서의 자연의 이미지다. 인간은 자연 밖의 삶을 상정하기 어렵다.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상상한다면, 그리하여 아름다운 삶의 가능성을 포기할 수 없다면, 이 가능성의 바탕이자 근원이 되는 것은 자연인 까닭이다. 인간의 한계와 그 너머의 가능성을 표상하는 데 자연만 한 대상은 없다. — 자연에 대한 짧은 생각, 문광훈 에세이 중에서))
이만큼 한낮의 찌는 더위를 식혀줄 소나기같이 자연의 변화와 욕구를 예술가적인 입장으로써 모든 것을 표현하고자 한다. 자연속에는 편하고 쉬운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작업을 하기보단 예술가적 입장으로 보다 쉽게 자연에게 다가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의 작업 세계, 수많은 생각들로 이루어지는 하나의 이미지를 한번쯤 생각을 하게 만들자는 입장으로써 일상적인 부분 찾았다고 보면 되겠다.
예를 들어 일반 사람들이 느끼기에 일상의 고민을 씻어주는 소낙비같은 현대사회의 갈증해소.
농작물을 경작하다보면 먹구름이 몰려오기를 간절히 기다릴 때 비구름은 정말 반가운 손님이다.
자연의 다양한 변화는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그들이 필요한 환경에 살고 있고 그 변화 세상사의 걱정거리를 해결하려한다.
지금까지 나의 작업이 물질만능주의와 자연주의의 비교 관찰이었다면 이젠 자연변화에 대한 시각을 구체화 시키고 언뜻 스쳐가는 자연의 노동을 표현하고자 한다.
2016. 9 정 인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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